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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홍후조 교수의 “학교 교육에서 무엇이 더 절실한가”

  • Editor. 이호선 기자
  • 입력 2022.04.28 13:49
  • 수정 2022.04.28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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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아롱(Raymond Aron, 1905년 3월 14일 ~ 1983년 10월 17일)은 현대 프랑스의 작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드골에 협력하여 잡지편집을 맡았다.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에 관한 저서가 있다.
레몽 아롱(Raymond Aron, 1905년 3월 14일 ~ 1983년 10월 17일)은 현대 프랑스의 작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드골에 협력하여 잡지편집을 맡았다.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에 관한 저서가 있다.

[홍후조 논설위원] 근대 학교교육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유’를 아는 ‘개인’을 제대로 가르쳐 길러내는 일이었다. 근대는 종교개혁, 과학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통해 왕, 영주, 지주 등의 압제로부터 농노, 노비, 노예를 풀어내어, 각 사람이 자기 힘으로 벌어먹고 사는 법과 제도에서 출발하였다.

불행히도 동양의 사상에는 개인을 존중하는 바가 없었다. 기껏 왕, 상전, 양반, 남자, 어른 등을 사람대접하기 위해 그렇지 못한 이들로 복종하고 섬길 것을 요구했다. 그것을 신분제도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북한, 러시아, 중국 등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들은 전체를 위해 하나를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북한은 절대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국가노예로 조선민주(民主)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실상은 민노(民奴)주의가 되고 말았다.

개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은 서양에서 루터 등의 종교개혁 이후에 처음 등장하였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고 가르친다.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 누구나 서로 존중하고 섬길 뿐, 왕, 주인 등이 씌어준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가르친다.

자유로운 개인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농사짓고, 장사하며, 사업을 벌여 자기 재산을 일구고, 그 사유재산은 천부인권만큼이나 누구나 함부로 빼앗아 갈 수 없는 소중하다고 가르친다. 부자는 가난한 이를 돌보아야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다만 자유로운 개인은 국가나 위임받은 통치자들과 ‘계약’을 통해 세금을 내고 일부 의무 수행을 통해 자신의 자유, 안전, 생명, 재산, 기본권 등을 보장받는다.

자유는 결코 그리고 단순히 ‘자유롭게 생각해 봐’의 일상어가 아니다. 자유는 법철학적 개념으로 개인의 자기자치(self-government)원리이고, 한 나라가 타국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그 주권을 자결하고 행사할 수 있는 여지이다. 자유는 구속의 반대어로, 주인이 누리고 종은 누리지 못한다. 근대국민국가의 국민은 누구나 주인이지 종이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라는 용어를 20번 언급하는데 그 중에서 11번은 ‘정당 설립, 신체, 거주 이전, 직업선택, 주거, 사생활, 양심, 종교,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학문과 예술, 경제할 자유’처럼 자유가 행사될 분야를 다룬다. 양심의 자유는 있으나 극단으로 밀고 가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깨는 ‘사상’의 자유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 전문(前文)에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나라이고,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체제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남북을 분단시킨 것은 자유이지 민주가 아니다. 수천만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밀려왔으며, 오늘날에도 탈북민이 줄을 잇는 것은 ‘민주’가 아니라 ‘자유’를 찾아서이다. 민주는 자유와 짝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우리 헌법은 ‘민주’도 10번 언급한다. 민주는 독재의 반대어이다.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의 방법으로 다수결이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대화와 타협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지상과제로 하여 ‘민주화’는 고귀하고 선한 것으로 받아 들여져왔다. 그러나 일부 주사파들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반대한민국, 반미, 반일, 친북, 종북, 친중 활동을 하여 자유민주체제를 전복시키려 든다. 독일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는 조항을 10군데, 우리 헌법은 2군데 두었다.

불행히도 ‘민주’는 오염되고 타락하였다. 공산주의국가인 북한, 동독, 예멘은 국호에 민주주의를 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안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인민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로, 진보적 민주주의로 부르다가, 급기야는 자기 체제를 그냥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는 어느 새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언어 혼란 전술로 ‘민주’는 오염되고 타락하였다. 그들은 가기들이 다수 노동자와 농민이 소수 자본가와 지주를 지배하는 ‘진짜’민주주의이고, 자유민주주의는 그 반대로 소수 자본가와 지주가 지배하는 ‘가짜’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실상은 자유민주, 자유시장 국가들은 개인과 기업의 창의와 혁신, 자유통상으로 부를 이루어 실제로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복지국가가 되었다. 프랑스 사상가 레몽 아롱(Raymond Aron)은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고, 그래서 ‘똑똑하고 정직한 사람’은 좌파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좌익 사상은 똑똑하나 남을 속이는 자나 정직하나 어리석은 자들의 것이다.

근대 이후 개인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천부인권은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그가 누리는 자유는 스스로 자립하고 독립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간에도 연장된다. 그러나 국제관계는 아직은 힘이 정의이고 국익이 우선이다. 강대국은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약소국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형편이다. 우리는 학교교육을 통해 ‘자유’를 제대로 가르쳐 ‘개인’이 국가나 왕 혹은 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 하지 않고, 제 힘으로 스스로 독립하고 자존하는 존재로 키워야 한다. 국가가 내 삶을 책임져 준다고 하여도, 내게 가장 중요한 생명, 재산, 기본권, 일 등을 내 스스로 한다고, 할 수 있다고 그 유혹을 거부하고 속지 말아야 한다. 그 길은 ‘노예의 길’로 통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내 건강과 생명은 내가 책임질 터이니 나한테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구미국가들의 자유로운 개인을 우리는 참 지나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그들의 조상들은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민주주의 제단(祭壇)에 수많은 피를 뿌렸다. 그 열매를 소중히 지켜나가려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구한말 서양 기독교선교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개인의 자유’를 소개받았다. 거기서 이상재, 이승만, 안창호, 윤치호 등이 자라나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싹텄다. 일제 하 시련을 겪으면서 미국의 호의로 해방을 맞았고, 6.25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서 개인의 자유는 보호되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고 자유는 애써 가르쳐야, 보조금, 국가세금을 축내려는 노예근성이 없어지고 자주 독립적인 당당한 개인이 길러진다. 학교는 교육을 통해 개인을 발견하게 하고, 자유를 행사하게 하는 곳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당연시 하고 소홀히 취급해왔다. 그 결과 자주 독립적 개인보다 각종 지원금과 보조금을 노리는 ‘세금 충’의 노예근성이 자라났으며, 자유는 방종으로 흐르기도 한다. 학교교육의 근본 목적을 ‘개인과 자유’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필자: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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